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 (문단 편집) == 결과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정당별 결과/새누리당)] 이런 새누리당의 추태에도 불구하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상으로는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기 때문에 새누리당도 선거 기간에는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어떻게든 갈등을 묻어두고 선거에 임했으나 선거 결과 국내 총선 역사상 손에 꼽힐 만한 대반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러한 행위들은 죄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참패했고 비박과 친박은 선거 패배의 이유가 니들 때문이라며 서로 공격하기 시작해 당내 계파 갈등은 더 심해졌다.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옥새 투쟁으로 김무성이 지원하려고 한 무소속 후보들 역시 다수는 낙선하고 말았다. 새누리당 후보 공천을 추인했지만 속마음으로는 무소속 후보를 밀었을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서는 컷오프(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주호영]] 의원만[* 이 때문에 [[이인선]]은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나와서도 TK에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리고 4년 뒤 [[21대 총선]]에서는 [[김부겸]] 자객공천 목적으로 주호영이 수성을에서 갑으로 자리가 옮겨지면서 생긴 수성을의 빈 자리에 이인선이 다시 공천됐으나 4년 전의 주호영을 뛰어넘는 [[홍준표|거물급 중진 의원]]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수성을에 나왔다. 당연히 이인선 정도의 경력으로 홍준표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이인선은 보수당 당적을 달고 TK에서 2번 연속 낙선한 유일한 인물이 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다만 홍준표가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하려고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생긴 빈 자리에 보궐선거로 입성하면서 3수 만에 배지를 달았다. 이인선은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어느 인터뷰에서 "20대 총선 때는 주호영 의원도 갑자기 밀려났고 나도 갑자기 수성을로 공천되어 서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주 의원과 나는 [[영남대학교]] 동기다. 그래서 '당신은 이미 한 발 앞서가 있고 나는 이제 출발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경쟁해보자'라고 말했고, 주 의원이 나 대신 당선될 때도 이미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도 지고 난 후에는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다. 홍 대표가 19대 대선 나가셨을 때 원외 당협위원장으로서 열심히 도와드렸는데 하필 내 지역구를 치고 들어왔을까, 저분은 자체 지지도가 있으니까 다른 지역구로 가도 당선이 될 텐데 내가 쉬워보여서 온 건가 하는 원망이 들었다."고 회고했다.[[https://youtu.be/F24123Fqb5w|#]]], 새누리당 무공천 지역에서는 유승민만 생존하고 이재오 의원과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은 낙선했다.[* 이재오는 자기가 직전까지 터줏대감으로서 5선이나 해 왔던 안방 지역구에서 떨어지고 김영순은 새누리당 우세 지역이라고 평가받던 송파에서 떨어져 둘 다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다만 이때 [[더불어민주당]] 당적으로 김영순을 꺾은 [[최명길(정치인)|최명길]]은 2017년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으로 이적했고 이후 벌금 200만원 당선 무효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